두렌 우물가. 곰 같은 사내 하나가 혼자 여섯을 막고 있었다.
흉터 진 거구였다. 발밑에서 돌바닥을 무릎까지 밀어 올려 벽을 쳤다. 돌 계열. 그 뒤에 마을 사람들이 숨어 있었다.
“우물 마르면 두렌은 겨울에 다 죽어. 이건 징발이 아니라 살인이야.”
“살인?” 징발대 우두머리가 코웃음 쳤다. 손에 쇠못을 쥐고. “노인네, 벨렌 국경 꼴을 알아? 우물 하나 아끼다 나라가 무너지면, 두렌은 안 죽어?”
엘리안이 언덕을 내려왔다. 큰물 등급 셋. 정면으론 거구 혼자 못 버틴다.
“애는 빠져.” 거구가 엘리안을 밀쳤다. “손가락 튕기기도 전에 재 된다.”
“그쪽 걱정이나 해요.” 엘리안이 쏘아붙였다.
그러곤 우물이 아니라 발밑 땅을 들었다.
우물은 살아 있었다. 가늘게. 문제는 땅이었다. 마당 한복판, 사람들이 몰려 선 그 자리. 거기만 흐름이 뚝 끊겨 있었다. 죽은 맥. 마른 땅. 저기선 아무리 센 마법사도 실오라기 하나 못 쓴다.
정면으론 못 이긴다. 저 자리로 끌면 얘기가 달라지지.
엘리안은 우두머리에게 걸어가, 손을 뻗어 인장못을 낚아챘다.
“어?” 우두머리가 제 빈손을 봤다.
“이거 없으면 징발 못 하죠?” 엘리안이 뒷걸음질 쳤다. 마당 한복판, 마른 땅으로. 못을 손끝에 걸고 흔들며. “큰물 등급이면 와서 뺏든가. 셋이서.”
우두머리 얼굴이 시뻘게졌다. 잿밥한테 물건을 뺏겼다. 그가 부하 둘을 끌고 성큼성큼 들어왔다. 셋 다. 손끝에 불꽃이 뭉쳤다.
세 걸음. 마른 땅을 밟았다.
불꽃이 픽, 픽, 픽. 셋 다 꺼졌다.
우두머리가 제 손을 봤다. 다시 휘저었다. 아무것도 안 나왔다. 끌어 쓸 에오르가 없으니까.
“이 동네 우물, 벌써 하나 죽었거든요.” 엘리안이 못을 뱅글 돌렸다. “지금 밟은 자리 밑에서. 마법, 안 되죠?”
“지금이에요!”
거구가 씩 웃었다. 돌바닥을 파도처럼 밀어 셋을 가뒀다. 숨어 있던 두렌 사람들이 낫과 곡괭이를 들고 쏟아졌다. 마법 못 쓰는 마법사는 그냥 옷 비싼 사내였다.
셋은 나뒹굴었다. 우두머리가 진흙에 처박혀 빌었다. “자, 잘못했다! 우물 안 건드려!”
“인장못은 두고 가요.” 엘리안이 못을 툭 떨궜다. “다음에 또 오면, 그땐 안 봐줘요.”
셋은 진흙투성이로 달아났다.
그리고 두렌이 터졌다.
함성이었다. 사람들이 우물가로 쏟아졌다. 누가 엘리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이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봤다. “형, 방금 그거 어떻게 한 거예요?”
“이름이 뭐야?” “우리 우물 지켜줬어!”
열여섯 해 동안 그를 향한 소리는 늘 비웃음이었다. 잿밥. 우물 저주한 아이. 그런데 지금 이 소리들은—고마움이었다.
거구가 정수리를 헝클었다. “간 큰 꼬맹이. 단 브라이스다.”
“엘리안이요.”
“머리 좋네. 힘으로 안 되면 땅으로 이기고.” 브라이스가 손을 내밀었다. “이 골짜기서 학회 개들 코를 납작하게 한 건 네가 처음이야. 붙어 다니자. 재밌겠어.”
엘리안이 그 손을 잡았다. 진짜로 웃으면서.
두렌은 그날 밤 잔치를 열었다. 국밥과 술이 엘리안 앞에 놓였다. 잿밥이 아니라 손님으로. 그는 그 온기를 실컷 쬐었다. 이 하루는, 아무도 못 가져간다.
이튿날 새벽, 말 한 필이 마을을 지나갔다. 검은 정복, 은빛 저울. 안장 위 사내가 잔칫상 자리를, 그리고 엘리안을 한 번 훑었다.
내리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다만 낮게, 아무에게랄 것 없이 던졌다.
“흐름을 읽는 잿밥이라. …이름이 뭐랬지.”
누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말을 몰았다. 이름은 이미 알아 간 얼굴로.
브라이스가 침을 뱉었다. “드레이번. 순회 징발관. 웃지도 않는 놈이 제일 나빠.” 그가 엘리안을 봤다. “너, 저 인간 눈에 든 거 같은데. 좋은 뜻은 아니야.”
엘리안은 멀어지는 등을 봤다. 등이 살짝 서늘했다.
하지만 그보다 뜨거운 게 있었다. 어제 두렌을 이겼다. 처음으로, 배운 걸 써서.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해서, 발이 근질거렸다.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