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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젯밤 ChatGPT에게 물어본 것들을 떠올려 보라. 연봉 협상 문구, 애매한 건강 증상, 이별 편지 초안, 회사 몰래 준비하는 이직 계획. 그 대화의 상당수는 어딘가의 서버에 남아 있고, 상당수 서비스는 그것으로 모델을 학습시킨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질문들을, 가장 감시가 쉬운 상대에게 털어놓고 있는 셈이다.
프로톤 Lumo는 바로 이 불편함을 정면으로 겨냥한 챗봇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제품을 “더 똑똑한 AI"가 아니라 **“덜 기억하는 AI”**로 이해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감시를 전제로 하지 않는 챗봇
Lumo를 만든 프로톤(Proton)은 원래 암호화 이메일 서비스 ProtonMail로 이름을 알린 스위스 회사다. 태생부터 “우리도 당신 데이터를 못 본다"를 팔아온 팀이라는 뜻이다. Lumo는 그 철학을 챗봇에 그대로 이식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Lumo는 대화를 로깅하지 않고, 제3자와 공유하지 않으며, AI 모델 학습에 사용하지 않는다 (출처: proton.me/lumo). 여기까진 요즘 많은 서비스가 내거는 약속이라 새롭지 않다. 진짜 차이는 그다음이다.
저장된 대화 기록은 제로액세스(zero-access) 종단간 암호화로 보호된다. 복호화 키가 사용자 기기에만 있어서, 프로톤조차 당신의 대화 내용을 열어볼 수 없다 (출처: TechCrunch). 대부분의 챗봇이 “우리는 안 본다"고 말할 때, Lumo는 “우리는 볼 수 없게 만들어 놨다"고 말한다. 약속과 구조는 다르다. 약속은 정책이 바뀌면 뒤집히지만, 암호화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지리적 방패까지 더해진다. Lumo는 유럽 소재 인프라의, 프로톤이 직접 통제하는 서버에서만 구동되고 스위스 프라이버시 법의 적용을 받는다 (출처: Cybernews). 미국 빅테크의 데이터 관행이나 각국 정부의 열람 요구에 대한 불안이 있는 사용자라면, 이 “스위스에 서버가 있다"는 한 줄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올 것이다.
문턱이 없다는 것의 무게
프라이버시 제품은 대개 불편함을 대가로 요구한다. 계정을 만들고, 인증을 거치고, 설정을 뒤지고 나서야 안전이 시작된다. Lumo는 이 공식을 깼다.
프로톤 계정 없이도 바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무료 플랜으로 이용 가능하다 (출처: proton.me/lumo/pricing). 신용카드도, 가입도 필요 없다. 링크를 열고 질문을 던지면 그걸로 끝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프라이버시의 최대 적은 감시 기업이 아니라 귀찮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전한 도구라도 켜기까지 다섯 단계를 요구하면 사람들은 결국 그냥 열려 있는 ChatGPT 탭으로 돌아간다. Lumo는 “안전하려면 불편을 감수하라"는 오래된 협박을 없앴다. 나는 이 점이 암호화 기술 자체보다 더 영리한 설계라고 본다.
무료가 충분치 않다면 유료 플랜도 있다. Lumo Plus는 월 $13 또는 연 $120으로, 무제한 채팅과 확장된 기록, 대용량 파일 업로드를 제공한다 (출처:(https://factually.co/product-reviews/electronics-tech/proton-lumo-plus-worth-13-month-independent-reviews-comparisons-3fd0ef)). ChatGPT Plus와 얼추 비슷한 가격대다. 다만 이 지점에서 냉정해질 필요가 있는데, 같은 돈이면 무엇을 포기하는지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함에는 청구서가 따라온다
여기서부터가 이 후기의 진짜 알맹이다. Lumo를 마냥 칭찬하는 글은 당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
첫째, 머리가 조금 늙었다. Lumo의 정보 학습 컷오프가 2024년 4월이라, 경쟁 챗봇 대비 답변이 오래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웹 검색 기능을 켜도 응답 품질이 떨어진다는 리뷰가 있다 (출처: TechCrunch). 최신 뉴스나 이번 주에 나온 라이브러리 문서를 물어보는 용도라면 Lumo는 약한 손이다.
둘째, 안정성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일부 사용자가 메시지가 표시되지 않거나, 응답이 중간에 멈추거나, 앱이 충돌하는 성능 문제를 보고했다. 물론 이런 종류의 불만은 신생 제품에 흔하고 업데이트로 개선되기 마련이지만, 지금 이 순간 “업무 핵심 도구"로 삼기엔 리스크가 있다는 뜻이다.
셋째, 고급 기능의 공백이다. ChatGPT와 Gemini에 있는 ‘Deep Research’, 커스텀 GPT 같은 기능이 Lumo엔 없고, 표 같은 데이터를 읽기 어렵게 표현한다는 지적이 있다. 여러 소스를 훑어 리포트를 뽑아내는 무거운 작업은 Lumo의 영역이 아니다.
넷째, 출시 초기에는 지나치게 몸을 사렸다. 무해한 요청까지 자주 거부한다는 불만이 있었다. 안전을 최우선에 둔 제품이 흔히 빠지는 함정 — 과잉 검열 — 을 Lumo도 피하지 못했던 셈이다.
다만 이 단점 목록에 반전이 있다. 프로톤은 최근 Lumo를 새 아키텍처로 재구축한 2.0을 내놨고, 고급 추론과 다단계 작업 처리 능력을 끌어올렸다 (출처: TechCrunch). 여기에 웹 검색, 파일 업로드, 이미지 생성이 붙었다. 위에 나열한 약점 중 일부는 이미 회사가 인지하고 손대고 있는 문제라는 얘기다. 방향은 분명 옳다.
그래서 누가 써야 하는가

Lumo를 ChatGPT의 대체재로 놓고 성능표를 그으면 백전백패다. 추론 깊이, 최신성, 기능 다양성 어느 쪽으로 붙어도 아직은 밀린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잘못된 링에서 벌인 시합이다.
Lumo가 이기는 링은 따로 있다. 변호사와 나누는 사건 상담, 심리적으로 취약한 순간의 질문, 아직 공개되지 않은 사업 아이디어, 회사 계정으로는 절대 검색하지 못할 것들 — 대화 내용 자체가 위험이 되는 순간들이다. 이런 대화에서는 “얼마나 똑똑한가"보다 “누가 이걸 볼 수 있는가"가 먼저다. 그 질문에 대해 Lumo만큼 깔끔하게 “아무도"라고 답하는 챗봇은 드물다.
내 결론은 이렇다. Lumo는 당신의 유일한 AI가 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챗봇이면 충분하다. 무겁고 창의적인 작업은 성능 좋은 도구에 맡기고, 남에게 보이면 안 되는 사적인 대화만 Lumo로 옮기는 방식이다. 계정도 카드도 필요 없으니 그런 이중 살림에 드는 비용이 사실상 0이다 (출처: proton.me/lumo). 이 “공짜 두 번째 탭” 전략이야말로 지금 Lumo를 가장 똑똑하게 쓰는 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편리함의 대가로 감시를 너무 오래, 너무 당연하게 지불해 왔다. Lumo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청구서를 거부할 선택지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다. 안전한 대화의 시작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