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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이번 주말 강남에서 파스타 어때?“라고 답장을 보내려던 참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됐을 것이다. 대화창을 빠져나가 지도 앱을 열고, 검색하고, 마음에 드는 집을 캡처하고, 다시 대화창으로 돌아와 붙여넣기. 앱 네 개를 오간 15초. 그런데 그 15초는 하루에 수십 번 반복된다.
키보드는 지난 15년간 놀랍도록 게을렀다. 오타를 잡아주고 다음 단어를 눈치껏 띄워주는 것—딱 거기까지였다. 우리가 가장 오래 손대는 인터페이스가, 정작 가장 멍청한 도구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Acti는 바로 그 지점을 노린다. “추천하는 키보드"가 아니라 “행동하는 키보드”.
키보드가 ‘에이전트’가 된다는 것
Acti는 스스로를 ‘Agentic Keyboard(에이전틱 키보드)‘라 부른다. 단어를 제안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메일·메시지·SNS 등 지금 쓰고 있는 앱 안에서 앱 전환 없이 사용자를 대신해 행동을 실행하는 iOS·Android 키보드다. (TechCrunch)
여기서 ‘안에서’라는 단어가 핵심이다. 대부분의 AI 비서는 별도의 방으로 당신을 부른다. 챗봇 앱을 열고, 질문하고, 답을 복사해 원래 앱으로 돌아오라고. Acti의 발상은 정반대다. 비서를 부르러 가지 말고, 비서를 자판 위에 상주시켜라. 당신이 이미 손가락을 올려둔 그 자리에.
작동 방식은 세 개의 축으로 정리된다. (openacti.com)
- ActiBar — 스페이스바를 대체한다. 누르면 평범하게 띄어쓰기, 길게 누르면 AI가 액션을 실행한다. 가장 자주 닿는 키를 관문으로 삼은 영리한 선택이다.
- Skill Keys — 아무 키나 길게 누르면 내가 만들어둔 커스텀 명령(Skill)이 튀어나온다. 자판 하나하나가 단축키가 되는 셈.
- AI Dictation — 텍스트 필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자연어로 말해 입력한다.
말로 풀면 밋밋하지만, 실제 장면으로 그려보면 감이 온다. 회의 초대 메시지를 받았을 때 ActiBar를 길게 눌러 “이거 내 캘린더에 넣어줘"라고 하면, 앱을 나가지 않고 일정이 잡힌다. 라이브 스포츠 경기 시간, 근처 맛집, Notion 문서, LinkedIn 프로필, 회의 링크—이 모든 걸 대화창을 떠나지 않고 불러와 그 자리에서 캘린더 액션까지 실행한다. (openacti.com) 아까 그 파스타집 검색이 자판 위에서 끝나는 것이다.
진짜 무기는 ‘코딩 없이 만드는 Skill’
기능 소개만 보면 “구글 어시스턴트를 자판에 붙인 거 아냐?“라고 넘길 수 있다. 그런데 Acti의 승부수는 다른 데 있다. Skills—사용자가 원하는 동작을 그냥 평범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코딩 없이 나만의 단축 명령이 만들어진다. 만든 Skill은 비공개로 두거나, 공개 Skill 마켓에 공유할 수 있다. (TechCrunch)
이게 왜 중요한가. AI 도구가 흔히 부딪히는 벽은 “만든 사람이 상상한 기능"에 갇힌다는 점이다. Skill은 그 벽을 사용자에게 넘긴다. “받은 영어 메일을 정중한 한국어 답장 초안으로 바꿔줘”, “이 주소를 지도 링크로 만들어줘”, “회의록에서 할 일만 뽑아 체크리스트로” 같은 걸 내가 직접, 문장 하나로 정의한다.
숫자가 이 발상의 힘을 증명한다. 초기 테스터들은 2주도 안 되어 1,000개 이상의 Skill을 만들었다. (TechCrunch) 회사가 기능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 사용자들이 서로의 발명을 나누며 기능이 스스로 번식하는 구조다. 이건 도구라기보다 작은 생태계에 가깝다.
배경을 보면 이 야심이 허풍만은 아니다. Acti는 BITKRAFT Ventures 주도로 530만 달러 시드 투자를 유치했고, 창업자 Young Wang은 Baidu에서 Facemoji Keyboard를 일 활성 사용자 3억 명 규모로 키운 이력이 있다. (TechCrunch) 키보드로 3억 명을 모아본 사람이, 이번엔 그 키보드를 에이전트로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 자판을 다 본다"는 불편한 진실
여기서 솔직해지자. 키보드 앱은 태생적으로 위험하다. 비밀번호, 카드번호, 은밀한 대화—당신이 치는 모든 글자가 그 앱을 거친다. AI가 자판 위에서 행동한다는 건, 그만큼 넓은 권한을 손에 쥔다는 뜻이기도 하다.
Acti의 답은 ‘로컬 우선(local-first)‘이다. AI는 Google Gemini 모델로 구동되지만, 개인 컨텍스트는 기본적으로 기기에 남고, 외부 처리가 필요한 기능을 명시적으로 호출할 때만 서버로 전송된다. (TechCrunch) 설계 철학은 분명 합격점이다.
다만 냉정하게 짚을 지점이 있다. 이 모델은 결국 사용자가 그 경계를 신뢰하고 이해해야 성립한다. “명시적 호출 시에만 전송"이라는 선은, 내가 어떤 액션이 클라우드를 부르는지 인지할 때만 유효하다. 게다가 AI 기능 자체가 Gemini에 전적으로 의존하므로, 외부 처리가 필요한 순간엔 제3자 모델의 성능·가용성·클라우드 연결에 운명을 맡기게 된다. 키보드처럼 예민한 자리에서 이건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공짜의 함정과, 아직 비어 있는 가격표
지금 Acti는 무료다. 키보드·음성입력·ActiBar 에이전트·앱 연결·Skill Builder·Skill Hub까지 전부 포함된다. (openacti.com) 진입 장벽이 없다는 건 분명한 매력이다.
그런데 무료에는 각주가 붙는다. 남용 방지를 위한 크레딧 기반 사용 한도가 걸려 있어, 무제한이 아니다. (openacti.com) 그리고 더 강력한 AI 모델·높은 일일 한도·프리미엄 기능을 담은 유료 구독이 예고돼 있다. 문제는 구체적인 가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 (TechCrunch) 공식 약관상으로도 현재 유료 플랜·인앱결제가 없는 상태라, 유료 티어는 미확정으로 봐야 한다.
이 대목은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게 맞다. 지금의 넉넉한 무료는 초기 사용자를 모으는 미끼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 편리해질수록 한도에 자주 부딪히고, 그때 등장할 가격표가 이 도구의 진짜 가치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 “무료라 좋다"고 판단을 끝내면, 유료화 시점에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써야 할까

Acti가 겨냥하는 건 사소해 보이지만 실은 거대한 낭비다. 앱과 앱 사이를 오가느라 흘리는 몇 초, 그 몇 초가 하루에 수백 번 쌓여 만드는 마찰. 키보드는 그 마찰이 발생하는 정확한 현장이고, Acti는 비서를 그 현장에 배치했다. 발상 자체는 옳다.
냉정한 결론은 이렇다. 얼리어답터라면 지금 무료일 때 만져볼 이유가 충분하다. 특히 Skill을 직접 만들어 자기 습관에 맞추는 재미는, 지금의 무료 한도 안에서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반대로 프라이버시에 예민하거나 안정성을 우선한다면, 유료 가격표가 공개되고 Gemini 의존 구조의 실사용 경험이 쌓일 때까지 한 걸음 물러서 지켜보는 편이 현명하다.
키보드가 마침내 게으름에서 깨어나고 있다. 다만 깨어난 도구가 얼마나 똑똑한지 못지않게, 그 도구를 얼마나 똑똑하게 쓰는지가 관건이다. 자판 위에 앉은 에이전트에게 무엇을 시킬지—그 상상력이 결국 당신 손끝의 생산성을 가른다.
